어릴 때 통영의 한 섬에서 살았습니다. 섬에만 있다보니 통영시내에는 가끔 가게 되고 그것도 배 시간에 맞춰 다시 섬에 들어가야 하니 통영에 대해서 아는 것이 별로 없었네요.
사람들이 어디 출신이냐고 물어보면 통영에서 왔다고 대답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좀 깊숙이 질문이 들어오면 전 대답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제가 아는 것은 통영 남망산공원, 중앙시장, 서호시장 여객선 터미널이 다였습니다.
이제는 부모님께서 섬에서 나오셔서 통영에 사시니 섬에 들어갈 필요가 없습니다.
추석을 맞아 통영에 가 보았습니다.
서울에서 용인쯤 가니 구름이 너무 멋집니다.
김춘수 유품 전시관이 보이네요
김춘수
1922년 11월 25일 경상남도 통영군 통영면 서정(현 통영시 동호동)에서 아버지 김영팔(金永八)과 어머니 허명하(許命夏) 사이의 3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경기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41년 일본으로 건너가 니혼대학 예술학부에서 공부했으나, 1942년에 천황과 조선총독부를 비판하여 1943년에 퇴학당했다. 1946년에 귀국하여 1951년까지 통영중학교, 마산고등학교에서 교사를 역임했다. 1946년에 시 <애가>를 발표하면서 등단, 이 때부터 시를 본격적으로 발표하기 시작했다. 1961년 경북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전임강사를 맡은 것을 시작으로 교단에 들어선 그는 1964년부터 1978년까지 경북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재직했고, 1979년부터 1981년까지 영남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영남대학교의 문리대 학장을 지내다가 1981년에 정계로 들어오며 교수직을 내려놓았다. 이후 시인과 평론가로서 활동한다. 1948년 첫 시집인 <구름과 장미> 출간을 시작으로 시 <산악(山嶽)>, <사(蛇)>, <기(旗)>, <모나리자에게>, <꽃>, <꽃을 위한 서시> 등을 발표하였다. 다른 시집으로는 <늪>, <부다페스트에서의 소녀의 죽음>, <타령조 기타>, <처용(處容)>, <남천>, <비에 젖은 달> 등이 있다. 1958년에 한국시인협회상, 1959년에 아시아 자유문학상을 받았다. 출처 : https://namu.wiki/w/%EA%B9%80%EC%B6%98%EC%88%98 |
꽃
김춘수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는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고등학교 때 국어선생님은 당신이 경북대학교에서 수학하시던 시절 김춘수 시인이 거리를 다니시던 것을 회고하시고 이야기도 해주셨습니다. 이 때 신동집 시인의 오렌지와 비교하며 공부했었지요.
여기 빨간 네모지점이 김춘수 시인 유품 전시관입니다.
아 공기가 너무 좋습니다.
거리에는 사람이 없어 한적합니다.
평범한 이 동네 신신분식을 끼고 돌아가면 무엇이 나올까요?
저멀리 해저터널이 보입니다.
어릴 때 TV를 보니 6시 내고향 같은 프로그램에서 통영 해저터널에 대해 방송을 했더랬습니다. 그 프로그램에서 문제를 내기를 동네 꼬마들이 해저터널에 들어갈 때 막대기를 하나씩 가지고 들어가는 겁니다. 왜요?
알고보니 그 때는 해저터널 내에 조명시설이 없어서 막대기로 벽을 치면서 감을 잡으면서 갔다네요. 지금은 내부에 조명시설은 물론 통영과 해저터널에 대한 설명이 계속 되지요. 그 시절 그 아이들은 다들 아빠 엄마가 되었겠지요.
1930년대 당시 통영 시가지와 미륵도 사이를 도보로 왕래할 수 있는 연결로가 존재하지 않아 통행에 불편함이 야기되자, 일제에 의해 1927년부터 1932년 까지 약 5년간 통영반도와 미륵도 사이를 연결하는 길이 461m, 높이 3.5m, 넓이 7m, 깊이 10m[1]의 해저 통행로가 건설되었다. 양측에 제방을 설치하여 물을 막고 직접 터파기한 후 콘크리트를 타설하는 가장 단순한 시공 방법인 가물막이 공법으로 축조되었다. 이 해저터널 건설에는 꽤나 재미있는 속설이 있다. 보통이라면 다리를 지었겠지만 그곳이 하필 착량묘(鑿梁廟) 자리였던 것이다. 착량묘는 착량지 부근에 위치해 있는데, 착량지는 당포 해전 당시 패주하던 왜군이 해협에 다리를 만들어 도주했다는 이야기가 있는 곳이다.[2] 이 때문에 당시 일본인들은 조상들의 시체가 있던 곳 위를 조선인들이 지나갈 수 없다고 하여 기존의 착량교를 해체하고 해저터널을 만든 것이다. 광복 이후에도 사용되고 있었으나, 1932년 완공 이래 오랜 시간이 경과되어 바닷물이 스며드는 등 시설이 상당히 노후되자 충무교를 가설하고 자전거를 제외한 차량의 통행을 금지하였다. 1967년에 해저터널이 지나는 위치에 운하교인 충무교(판데다리)가 완공되고 1998년에는 통영대교가 준공되면서 현재는 이들이 통영반도와 미륵도를 오가는 교통 기능을 담당하고 있다.[3] 이후 미륵도 상수공급 목적으로 터널 양측에 상하수도관을 매설한 콘크리트 구조물을 설치하면서 터널의 폭이 당초 7m에서 5m로 좁아지게 되었다. 2005년에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동양 최초의 해저터널로 등록문화재에 지정된 이래로 통영시에서는 해저터널을 관광시설로 개발하려는 갖은 시도를 했지만 애초 교통용으로 건축된 밋밋한 콘크리트 구조물 뿐이라 특색이 없고 관광 컨텐츠도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았다. 방문객들도 상당수가 불만족스럽다고 반응하며 발길이 끊기자,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내부 벽면에 해저터널 역사 및 통영 관광 정보 전광판 등을 설치하였고 앞으로도 문화재 현상변경 허용기준 내 다양한 리모델링 방안을 계획 중이다. 출처: https://namu.wiki/w/%ED%86%B5%EC%98%81%20%ED%95%B4%EC%A0%80%ED%84%B0%EB%84%9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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